우리 어머니 아침마다 저녁마다
정지*에서 밥을 풀 때
솥뚜껑 열고 밥에 앉힌 감자
맨 먼저 한 개 젓가락에 꽂아 나를 주셨지.
겨울이면 정지 샛문 열고 내다보는 내 손에 쥐여 주며
꼭 잡아 꼭!
봄 가을이면 마당에서 노는 나를 불러
김 무럭무럭 나는 그 감자를 주며
뜨겁다 뜨거, 후우 해서 먹어!
후우 후우
나는 그 감자를 받아먹으면서
더러 방바닥이나 마당에 떨어뜨리고는
울상이 되기도 했을 것인데
그런 생각은 안 나고
일찍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얼굴도 안 떠오르고
후우 후우 불다가 뜨거운 감자를 입에 한가득
넣고는 하아 허어 김을 토하던 생각만 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뜨끈뜨끈한 감자를 쟁반에 담아 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 감자를 먹으면서
그 날의 들 이야기를 하는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농사꾼들이 사는 마을
그런 마을에 가서 사는 꿈을 꾼다.
* 고흐의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란 이 그림은 고흐가 서른두 살 때 그린 그림인데, 나는 이 그림이 좋아서 지금도 벽에 걸어 두고 있다.
감자를 먹으며
스무 살부터 사십 년 넘게 선생님은 산골 작은 학교에서만 일하셨다.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몇 십 리 길을 시냇물 건너고 산을 넘으며 걷고 또 걸으셨다.
그 산길에서 선생님은 결코 잊지 못한 것이 어머니와 감자였을 것이다.
돌아가신 지금 하늘나라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감자를 잡수시겠다니
부디 그리 되어서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 권정생
글쓴이 이오덕(1925년 ~ 2003년)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공부하는 학자로 힘껏 살아오셨어요. 어린이를 참되고 바른 사람으로 키우는 일과 우리 말을 바로 쓰는 일에 애를 쓰셨지요. 선생은 김치나 된장을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이 선생처럼 살아온 '할아버지들의 세계'를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하고 싶어 이 글을 쓰셨대요. 이런 '할아버지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어받지 못하고 그것을 죄다 잃어버렸을 때, 그 때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걱정하시면서요.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생은 감자를 무척 좋아하셨대요. 그래서 친한 동무 권정생 선생한테 나중에 시골에서 감자를 가꾸며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대요. 이오덕 선생은 2003년 여름, 무너미 마을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하느님과 함께 뜨끈뜨끈한 감자를 후우 후우 불며 먹고 계시겠지요.
그린이 신가영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다가 몇 해 전 잠깐 농사짓는 마을 경기도 화성에서 살았습니다. 잊지 못할 번개들과 맹꽁이 울음, 백로들과 청둥오리들, 처음 보는 후투티와 꾀꼬리들. 밭을 만들다가 두꺼비를 다치게 했던 일과 고구마 키워 구워 먹던 일들. 내가 그리는 그림에 앞서 이 세상에는 더 아름답고 가슴을 울리는 것이 많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 사이 선생님의 글을 만났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받아 놓았지만 한동안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전화로 이런저런 그 시절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선생님 마음을 좇아가지 못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기 전에 돌아가신 선생님, 이 그림을 보고 뭐라 하실지 ...... 지금은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낯선 사람만 왔다 하면 요란스럽게 짖어 대고 왈왈 대눈 여섯 마리 강아지들이랑, 잔뜩 벌레 먹은 배추를 보고 뽑아 버리자는 저더러, 나비들이 오는데 그냥 두자고 하시는 엄마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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