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날1 《맑은 날》 김용택, 창비시선 0056, 1986년 8월 섬진강 22 - 누님의 손끝 누님. 누님 같은 가을입니다. 아침마다 안개가 떠나며 강물이 드러나고 어느 먼 곳에서 돌아온 듯 풀꽃들이 내 앞에 내 뒤에 깜짝깜짝 반가움으로 핍니다. 누님 같은 가을 강가에 서서 강 깊이 하늘거려 비치는 풀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누님을 떠올립니다. 물동이를 옆에 끼고 강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강물에 이르르면 누님은 동이 가득 남실남실 물을 길어 바가지물 물동이에 엎어 띄워놓고 언제나 그 징검다리 하나를 차지하고 머리를, 그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흘러가는 강물에 풀었었지요. 누님이 동이 가득 강물을 긷고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물장난을 치며 징검다리를 두어 간씩 힘껏힘껏 뛰어다니거나 피라미들을 손으로 떠서 손사래로 살려주고 다시 떠서 살려주며 놀다가 문득 누님을 쳐다보면 노을은.. 2024. 6. 8. 이전 1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