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2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창비시선 205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멀리로 멀리로만 지났쳤을 뿐입니다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눈부셔 분부셔 알았습니다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나희덕 시인은 흰꽃과 분홍꽃을 동시에 피우는 복숭아나무를 보며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수 많은 감정.. 2024. 5. 4. 《야생사과》 나희덕, 창비시선 301 두고온 집 오래 너에게 가지 못했어. 네가 춥겠다, 생각하니 나도 추워. 문풍지를 뜯지 말 걸 그랬어. 나의 여름은 너의 겨울을 헤아리지 못해 속수무책 너는 바람을 맞고 있겠지. 자아, 받아! 싸늘하게 식었을 아궁이에 땔감을 던져넣을 테니. 지금이라도 불을 지필테니. 아궁이에서 잠자던 나방이 놀라 날아오르고 눅눅한 땔감에선 연기가 피어올라. 그런데 왜 자꾸 불이 꺼지지? 아궁이 속처럼 네가 어둡겠다, 생각하니 나도 어두워져. 전깃불이라도 켜놓고 올 걸 그랬어. 그래도 이것만은 기억해. 불을 지펴도 녹지 않는 얼음조각처럼 나는 오늘 너를 품고 있어. 봄꿩이 밝은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나희덕 시인의 두고온 집, 그 집은 무엇을 말하는지요? 집이 추우면 시인도 추워진다고, 시간과 거리에 의해 소원해진 존재,.. 2024. 4. 24. 이전 1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