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쌍둥이 여동생들은 두 살 터울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마치고 집문을 여는 순간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던 여동생들은 저를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밖으로 놀러나갔습니다. 여동생들 대신 제가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답니다. 아직 한글을 완전히 깨치지 못했지만, 계몽사의 '한국전기전집'을 띄엄띄엄 읽으며 그 역사의 현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제법 한글을 깨친 뒤에는 학원사의 '대백과사전'을 친구 삼아 함께 놀았답니다. 책 출간 날짜가 단기로 표시되어 있었고 글씨가 정말 깨알같이 작았지만 종이 느낌과 냄새가 어찌나 좋았던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매달 동네책방에 가서 '소년중앙'을 사서 보고 친구들의 '새소년'과 '어깨동무'를 바꿔가며 보았답니다.중학생이 되면서 삼중담문고와 얄개 시리즈, 참고서를 사기 위해 동네책방을 자주 찾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인문·사회과학, 시, 소설, 수필,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심취하여 동네책방과 헌책방을 수시로 찾곤 했습니다.
1987년,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 '논장'. 고등학교 친구 흥주가 알려주었답니다. 노량진 대성학원의 수업이 끝나면, 저는 노량진역에서 탄 지하철 1호선을 시청역에서 덕수궁을 따라 걷고, 광화문 지하도로를 지나 금강제화와 세종문화회관 방향 샛길, 지금은 포시즌호텔을 끼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쳐, 종로빈대떡 사잇 길을 나와 길을 건너면 거기에 인문·사회과학 책방 '논장'이 있었습니다. 그 엄혹한 시절, 정부종합청사 근처에 어떻게 이런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있을까 의아해 했지요. 어떤 이는 '안기부에서 운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당시 '논장'은 광화문점과 성균관대점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책을 사고 나서 경복궁역까지 가는 동안 가슴이 콩닥콩닥거렸지만, 불신 검문에서는 대성학원 교재와 도시락만 보였으니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 만난 인연 들 중 '말: 보도치침', '말:5.18 광주항쟁'이 제 기억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5.18 광주항쟁 특별판 말지는 제 삶에서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책이랍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이사를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말: 보도치짐'과 '말: 6·10 민주항쟁'은 집에 있는데, 5.18 광주항쟁 특집호는 찾을 수가 없더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제 방에서 옷가지 등을 쓰레기통에 태워버렸다고 하더니, 그 때 그 특집호도 불 태워진 거 같습니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책방 '논장'도 다른 인문·사회과학 책방들처럼 명맥을 다했답니다. 광화문점이 먼저 문을 닫았고, 성균대점도 몇 차례 장소를 옮기다가 2004년 무렵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답니다. 오늘 책방 '논장'에 대해 자료를 찾다보니, 안기부가 아니라 대학 선배가 운영하셨더군요. 그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백완승' 선배가 1989년까지 '논장'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선배를 처음 만난 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난 어느 날, 북창동 어느 맥주집에서 밤을 새며 술잔을 나누었던 그 어느 날이었습니다. 암 투병 끝에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신 선배, 1987년 광화문 '논장'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었군요. 선배, 그 곳에서 평안히 평화로이 지내셔요. 제 심장을 뛰게 했던 선배. 고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