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어른'은, 우연히 자기 바로 앞에 선 작은 영혼에게 그 때 당면한 최선을 다해 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그저 보여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단숨에 드러나지 않지만 말없이 삶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멘토가 있다.
아이에게 주고 싶어서 만든 물건을 보고 다시 영감을 받는다. 때대로 문제들은 자리를 바꿔 보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해결될 때가 있다. 세상의 당연한 것들에 대해 "원래 그래."라고 하지 않고 다시 새롭게 말해 본다. 아이들은 늘 그렇다. 새로운 정보를 힘껏 받아들이고 그것을 연습한다.
글이 없으면 독자의 이야기가 된다. 글이 있으면 글을 따라가게 되지만, 글이 없으면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줄기차게 "이야기는 너에게 이에게 있어"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이미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속에 있고, 그림책은 그저 그것을 꺼낼 수 있도록 열어 주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내 책에는 여백이 많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로할 수 없으니 비워 두는 것이다. 그림책은 사유의 공간이 넉넉한 물건이다. 전달은 최소로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이끌고 와서 함께 완성한다.
그림책이 종종 다루는 '환상적인 세계'가 '허무맹랑한 세계'는 아니다. 환상은 현실에 기반해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늘상 오가며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도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상상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에 그 놀이를 더 재미있게 느낀다. 작품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림책을 만들 때는 의식적의든 무의식적이든, 미래에서 온, 그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이 살아갈 편견 없는 세상을 염두에 둔다.
어린이 책에 대한 편견은 살아 있지 않고 정형화된 귀여운 이미지들에서 온다. 그 귀여운 것들은 아이를 귀엽게만 보고 싶은 어른들이 생산한 것이다. 수많은 어린이 책의 작가들은 꾸준히 이렇게 이야기 해 왔다. "너희들은 절대로 약하고 귀여운 것이 아니야. 어른들이 너희에게 주는 역할을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란다. 너희는 삶으로 가득 찬 씩씩한 존재야." 자연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아무도 귀엽지 않다.
보여 주기 식으로 규모만 키우고 밖에서 유명인들 모셔 오느라 애쓰지 않고, 원하는 사람들이 시작해서 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 때, 그것이 정말 '축제'이지 않을까.
글 없는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섰을 때, 나는 변칙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 같다. 책의 물성과 매체성에 탐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 내 안의 이야기를 표현할 목소리를 갖게 되는 순간 진심으로 기뻣던 것 같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33925.html
"그림책의 독자가 그 누구보다도 창조적이고, 놀이에 진심이며, 가장 열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어린이지요."
죽음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배고품에 고통받고 있는 분쟁지역의 어린이, 그들도 폭격이 멈추고 총탄이 숨을 고르는 사이 재잘재잘 뛰어다니며 놀겠지요. 그 아이들도 그 창조적이고 놀이에 진심이고 씩씩하게 달려나갈 수 있는 세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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