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거날 / 박노해
오늘은 선거 날
투표소에 간다
신분증을 내밀고 투표용지를 받고
좁은 기표소에 들어서 나 홀로
붉은 도장을 들어 찍으려는 순간
떨린다
이게 뭐라고
마음도 손도 떨린다
행여 선을 넘을까
숨을 멈추고
꾹 찍는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지인들과 나직이 속삭인다
이유 왜 이리 떨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려
그렇다, 권력은 전율이다
권력에는 생의 전율이 흐른다
국가 권력의 칼을, 내 삶의 결정권을,
그 손에 쥐여주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이 나라는 떨고 있다
민주주의는 떨고 있다
삶의 자유는 떨고 있다
내 손에 이 투표용지 한 장을 쥐기 위해서
싸우고 갇히고 죽어간 수많은 벗들과
흰옷을 피로 물들이며 산천처럼 쓰러져간
내 안의 선조들이 나와 같이 떨고 있다
이게 뭐라고
실망하고 또 실망할 걸 알면서도
난 지금 떨고 있다
오늘 나처럼 숙연한 떨림을 품고
그래도 우리 함께 앞을 바라보는
한 사람,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 곧고 선한 마음의 떨림들이
세상을 조금씩 전진시키는 것이니
미래는 떨고 있다
희망은 떨고 있다
우리는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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